# 나와 함께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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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꽃 작성일11-09-17 08:20 조회1,157회 댓글1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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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났다. 친구와 헤어졌다.
가슴에 검은, 구멍이 드러난다.
연애를 했다. 사랑을 받았다.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끝이났다.
검은 구멍이 드러난다.
술을 마셨다. 술에서 깨어났다. 검은...
구멍이 드러난다.
자위를 했다. 손바닥에 묻은 뿌연 정액을 보았다. 검은 구멍이.. 보인다.
오래전부터 나는 나의 검고 커다란 구멍을 껴안고 살아왔다.
왜 나의 가슴에 그토록 깊게,
거대하게 뚫려버린건지..........
분명한 한가지는 무엇으로 메우려 해도 결국엔
다시 텅비고 말리라는..
지난 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혹시 그 검고 커다란 구멍은 무엇도 아닌, 누구도 아닌
친구도 연인도 술도 섹스도 아닌
바로 내가 들어앉아 메워야 할 공간이 아니었을까?
# 꿈
컴컴한 방 눅눅한 침대에 드러누워있다.
머리맡에서 싸늘하고 낯선 두 손이 스며나와 나의 목을 감싸쥔다.
힘을 주며 천천히 나의 목을 조른다. 나는 벗어나려 않고 오히려 안도했다.
마침 죽지못해 안달이었으므로 누가 대신해준다는데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무서웠다.
죽음은 生의 그 어느 순간보다 두려운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딱 그 순간만을 넘어버리면 내게 남겨진
숱한 삶의 두려움과 직면하지 않아도 되겠지.
버둥거리며 심장이 굳어가고 허리부터 빳빳하게 뒤틀리는 걸 느낀다.
차갑다. 죽음이란 이토록 차가운 것이구나.
꽉막힌 목으로 나는 끊임없이 이렇게 중얼거린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마지막까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던가보다.
그러나 나를 조르는 어둠밑의 '그' 또한, 내 등뒤에 누운 그 역시도
그렇게 끝없이 속삭인다. 연약하고 흐릿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으니
꿈에서 깨어난 한참 후
그 목소리는 너무도 낯익어 너무나 낯설었음을 깨달았다.
# 마음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을 불가知의 무의식과, 이를 다스리는
초자아의 불안정한 균형-간극으로 개념짓는다.
무의식은 내가 알 수 없는 '나'이다.
초자아는 세상으로부터 주어진 '나'이다.
결국 외부의 문화, 사회, 질서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역할은 부모나 가족이겠지.
뿐만아니라 자라나며 겪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내가 어리고 약할때 나보다 크고 강한 목소리로 나를 나를 정의한다.
어느새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나의 목소리가 되어간다.
# 외로움
어렸을 땐 외로움이란 단어를 알지 못했다. 심심하다고만 여겼을 뿐
누가 나와 함께 놀아줬음 좋겠다고 느꼈을 뿐.
어른이 되어 나는 외로움이란 단어를 알게 되었다.
그 단어는 지독한 절망인 동시에 가장 절실한 희망이 되었다.
희망을 품지 않으면 애초에 절망할 것도 없겠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사람은 외로워해야 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가장 확고한 증명이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너무 큰 희망과 너무 깊은 절망은 나를 병들게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껴줘야 할 몫까지도, 나는 그들에게 나를 아끼고
사랑해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이뤄지기 어려운 희망일뿐더러
이루어지지 않았을 땐 훨씬 더 많이 절망하고 외로워지겠지.
이렇게 외로움의 惡순환은 내 가슴의 검고 커다란 구멍을
더욱더 깊게 거대하게 자라나게 하였다.
# 잠언 28장
惡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치나니-
# 중독
어떤 누군가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보다 먼저, 스스로를 미워하는 법을
배운다. 어떤 누군가에게 惡을 저지렀을 수도
어떤 누군가에게 惡을 당했을지도..
마찬가지의 결과는 스스로를 싫어하고 두려워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오래되고 기나긴 도주는 시작된다.
쫓아오는 정체를 알진 못한다.
도망처야 한다는 걸, 벗어나야 한다는것만이..
무엇으로부터?
대체 무엇으로부터?
# 마법의 거울
인생의 태반을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온 나는
병든 마음을 고쳐준다는 어느 이상한 할머니를 찾아갔다.
그녀가 가진 마법의 거울은 사람의 꿈을 선명하게 비추어주고,
그 나쁜 꿈을 거울속으로 가두어 몰아내준다니.
믿기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 동안의 고통에 몹시 지쳐버린 나는
할머니가 지켜보는 작은의자 곁의 작은침대에 드러누워
어느새 쿨쿨 잠이 들어버렸다.
미로의 숲을 나는 헤맨다.
날카론 풀과 육중한 나무들, 어지러운 덩굴이 가로막은 수십여갈래의 길
쉴새없이 나는 뛰어다닌다. 새는 울지않고 호랑이의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지만
나는 나의 뒤를 검고 커다란 그림자가 쫓아온다는 걸 안다.
어딘가로부터, 아마도 숲의 바깥 꿈의 밖으로부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왜 그렇게 쫓아다니니? 힘들게.
나는 헥헥거리며 외친다.
- 도망치잖아요, 안 보여요?
- 어디로? 갈곳은 있니?
- 모르죠. 그냥 뭐 누구라도 하다못해 술이라도.. 여기보단 안전하겠죠.
- 그래?
- 네.. 아마 그리고 난 사랑을 찾게 되면, 내가 가질 수 없었던 사랑을 얻게 되면
이 짜증나는 곳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겠죠.
-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 맞아요.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이에요.
- 그럼, 니가 그토록 원하는게 사랑이라면.. 걸음을 늦춰봐
- 뭐요?
- 천천히 걸어보라구..
- 미쳤어요? 그럼 나 잡혀요!
- 미쳤다니.. 싸가지 없는 놈. 암튼 그냥 걸어봐. 천천히 걷다가 마침내 멈춰봐.
이 할미를 믿고.. 아니 너를 믿고.
물론 난 믿지 않았다.
내가 겪은 인생의 악몽으로부터 함부로 다른 누굴 믿어선 안된단 사실을
똑똑히 학습했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도망쳤다.
그리고 아무리 도망쳐도 이 꿈이, 이 숲이, 이 미로가,
끝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술이라도 마시고 게임이라도 하고
섹스를 하든 자윌하든 암튼 여러가질 할수있을텐데 젠장,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십년이 흐른것 같은데도 나는 여전히
여기 숲속의 미로를 정신나간 아기원숭이처럼 뛰어다니고만 있다.
- 아놔! 내 꿈은 언제 몰아내줄꺼야, 이 할망구야! 당신 사기꾼이지!
소리를 질러봐도 대꾸가 없다. 이런 식이다. 그녀의 말을 쌩깐 이후로
그녀 역시 나의 발악을 완벽하게 쌩까버린다.
그리고 난 꿈속에서조차 지쳐버린다.
배가 고프고 다리가 후덜거리고 피투성이의 발바닥은 감각없이 사라져버린 듯.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나는 무너져버린다.
이젠 진짜 못해먹겠다. 지겨워서라도
포기할래 씨발 좆같은 인생
미로의 숲 한가운데, 가장 깊고 어두운 수렁에 주저앉아 엉엉 울던 나는 문득
나도 모르게
고갤 돌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껏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다만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 검고 커다란 그림자는
나를 잡아먹어버릴것 같았으므로
그런데 나보다 열 발자국 남짓 떨어진 거기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캄캄한 커다란 '구멍'이
가만히 멈춰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왜그랬을까?
내게 남은 힘으로 천천히 걸어
꿈쩍도 않는 그것을 향해
다가간다.
구멍은 단지 구멍이다.
둥글고 시커멓고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무것도 보이지않는다.
나는 그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내겐 아무런 희망이 없고 이 숲에서 악몽에서
빠져나가는 길은 거기밖에 남지 않아서, 아마도 끝일 것이다.
무섭지만 많이 무섭지만 이 순간을 넘기고 나면 더 이상은 없겠지.
전부 끝나버렸을테니깐.
구멍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끝이리라 기대했지만
뜻밖에도 그 속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같았다.
캄캄한 거기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나를 닮은, 나보다 어리고 연약한 아이를 발견한다.
마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는 끝없이 중얼거린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나다.
# 나와 함께 살아가는 법
구멍속의 나는 촛불을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호주머니에 왜 촛불따위가 들어있는진 몰라도
암튼 담배를 끊진않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자그만 불빛이 타오르자 주저앉은 아이는 고개를 돌린다.
한참 아이와 나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싱긋 웃자 아이도 눈물자욱이 진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이제부턴 내가 널 웃게 해줄께.
이제부턴 내가 너한테 잘해줄께.
다른 누구가 인정해주기 전에
내가 먼저 널 인정해줄께.
다른 누구가 사랑해주기 전에
내가 먼저 널 사랑할께.
아무도 니 곁에 없어도
난 항상 니 곁에 있어줄께. 여기서. 이 곳에서.
말이 없는 아이는 역시나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눈물을 그친다.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그보다 훨씬 커버린 나의 손으로 붙잡았다.
나는 그 그 곳의 검고 커다란 구멍에서 작은 촛불을 켜고
한손엔 그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다른 한손으로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동안 본의아니게 나의 구멍을 너무나 검고 커다랗게 키워버렸고,
그런 어둠의 깊이를 헤아려 나아닌 다른누군가에게도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나를 만나고나서야 다른 누군갈 만날수 있음을..
나와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다른 누구와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집착 아닌 '사랑'을 할수 있음을
참 간단한 결론인데 이토록 길고 복잡하게 표현할수밖에 없는건
그동안의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고 나는 그게 나름 애틋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방법을 지금막 배우기 시작했단 느낌입니다.
나는 부족하고 어리석지만 아무리 부족하고 어리석어도
따스하게 바라볼수 있어야합니다. 잘못을 해도 죽어라고 말하지 말고
잘못을 고쳐 열심히 살아봐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용서하는 건 어렵습니다.
근데 나를 용서해야 다른 사람도 용서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사람은 몰라도 나는 나를 이해해주고 용서할수 있어야 합니다.
줏어들은건데
어떤 시를 읽고 감동받으면
그 시인을 좋아하게 되고
어떤 그림을 보고 감탄하면
그걸 그린 화가를 존경하고
그러므로 나를 믿고 사랑하게 된다면
나를 만드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많은 것들을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비록 교회는 안가지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여기까지. 그동안 혹사를 쫌해서 컨디션 되찾으면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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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sprout님의 댓글
sprout 작성일
긴글을 읽으며 내안의 나를 토닥이시고 제대로 만나신 비꽃님이 부럽고 대단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아직 모임에서 한번도 뵈진못했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포스와 글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느낌에 많이 배우고 저도 제자신을 토닥이는것을 어제부터 시작했는데 저에게 많은걸 느끼게 해주는 글입니다.
좋은 글의 나눔 감사합니다 ^^
비꽃님의 댓글
비꽃 작성일
bgm도 깔고 글도 쩜다듬어서 완전 감동적으로 만들라그랬는데 이제 수정이 안되네요
하지만 이것만으로 꽤 멋진 글이므로 ㅡ,ㅡ sprout님 아직 뵙지 못했지만 반갑습니다.
모임에 나가서 님들에게 배우고 느끼고 그랬는데 한동안 안갔네요. 조만간만나요우리.
SRI님의 댓글
SRI 작성일
참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 ..아니 삶입니다..
동굴속에 지쳐 울고 있는 작은 아이를 만나고 옆에 함께 있어 주었다느...
잘하셨네요...
잘하셨네요..
이글을 이번에 출판 될 "회복을 향한 첫 걸음" 의 책에 넣어서 많은 분들이 위로 받았으면 합니다.
비꽃님 어떠세요?
비꽃님의 댓글
비꽃 작성일
좋아요 근데그럴줄알았음 더잘쓸수있는데
고맙습니다 영광이에요
파인님의 댓글
파인 작성일
^^ 잘 지내고 계시는 군요..
나두 언능 읽어봐야쥐..... ㅎㅎ
비꽃님의 댓글
비꽃 작성일
파인님 덕분에 가끔 대화를 엿보곤.
잘 지내시죠? 하늘이좋아요오늘(`o')
파인님의 댓글
파인 작성일
T...T....
많이 슬픈데....
많이 기뻐요.....
그 아이 손 놓지 마세요.....
마르지 않았던 눈물.....
이제 흐르지 않을 수 있게...
설래다님의 댓글
설래다 작성일
지난 2주전 이군요 .
비꽃님 볼수 있길 바라면서 saa 에 갔습니다,
하지만 얼굴을 볼수 없어서 많이 많이 섭섭...
글을 읽으면서 저의 구멍 속의 아이에게도 "괜찮아" 응 "괜찮니?" 라고 물어 봅니다,
비꽃님 멋 지십니다,
멋 있습니다,
자신을 찿아 나가는 모습이 너무 멋 있습니다,
어린 비꽃에게 인사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린 비꽃님...
비꽃님의 댓글
비꽃 작성일
반가워요. 설레다님. 저는 지난주 오랫만에 들렀는데 엇갈렸군요.
잘지내시죠?
그러실것같구 그럴거라 믿습니다. 그리고분명 다시또뵙게될거라는^^
칭찬은 낼름받아먹을께요.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반가워요. 설레다님.
/
파인님 슬슬 손에 땀나고 귀찮아질려는 참. 뭐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ㅋ
파인님의 댓글
파인 작성일
ㅋㅋ
내 생각엔 넘 사랑스러울 거 같은데..
내 어린 아이도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