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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서 온 두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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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RI (112.♡.201.67) 작성일13-01-15 17:21 조회1,6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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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서 온 편지가 이후 답장이 왔습니다.
올려주신 답글로 인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으신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동일하게 아래의 편지를 읽고 답변해주시면 프린트해서 교도소로 편지를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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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게

서울엔 추위가 아주 대단하다는 것을 뉴스와 신문에서 봤습니다.
이제 2013년이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에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이 잘 되길 기도드립니다.
보내주신 사연으로 몇몇분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힘을 받았습니다.
슬픈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이곳에서 하루 빨리 가석방 혜택을 받아 모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회적으로 성범죄가 문제가 되어 최근 3년간 성범죄자는 가석방 혜택이 전혀 없답니다. 초범일 경우 ‘관용부’라 하여 그곳에서 출력을 하여 열심히 일을 하면 만기일보다 먼저 사회로 복귀를 할 수 있는데 초범이라도 성범죄자들은 무조건 만기일에 내보내준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재심의 결과를 떠나 만기일이 2018년 3월 13일로 가석방을 생각해 2016년 연말로 생각했는데 ……. 제 꿈이 무너진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재심에서 무조건 형기를 줄여야 할 것 같은데…….

제가 이런 격려의 글을 받았는데 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대구 교도소에서 수용생활을 하고 있는 인간 쓰레기 이00이라고 합니다. 절 환영해주시고 제게 힘을 주신 OOO씨, OOO씨, OOO님, OOO님, OOO씨 등 감사드립니다. 다들 저보다 나이가 많은 형님, 누님들일거라 생각이 듭니다. 전 올해 32살 청년으로서 제가 어떤 사람이며, 고민을 풀고 싶기에 펜을 들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여긴 사회와의 모든 통신들이 두절되어 수용자들끼리 자유를 뺏기고 살아가는 곳입니다. 제가 이곳에 올 때가 2010년 3월 27일이었습니다.
채팅을 통해서 알게 된 1살 많은 누나와 술을 먹곤 오히려 제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당시 전 집이고 모든 재산을 뺏기고 아프신 어머님과 함께 돈 한 푼 없이 길거리로 쫓겨나서 어머니께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약봉지를 달고서도 병원에서 간병사로 일을 하며 돈을 모아서 이사를 왔습니다. 2007년 전 사업이 부도나고 너무 힘이 들어 대학친구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오려다 5톤 트럭에 치여 생사를 헤매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생명을 다시 얻고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집은 포항이지만 병원은 대구였기에 어머니께선 생계 때문에 수술을 하고선 일 때문에 포항에 계신 날이 더 많았고, 전 그때까지도 제 현실을 비난만 했습니다.
그러다 병원에서 같은 환자인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딸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마음씨 또한 너무나 착해서 전 그녀를 잡기 위해 오로지 재활에만 힘을 썼습니다. 환자의 처지에 밤만 되면 산재 환자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셨고…….
재활이 어느 정도 된 것 같아 병원에서 퇴원을 해서 어머니의 생계에 도움이 되려 했습니다. 어렵게 택배 일을 찾아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엔 외로움뿐이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연인을 찾기 위해 채팅을 또다시 했습니다. 그러나 포항에서 채팅은 성 범죄의 도구였을 뿐이었죠. 물론 채팅을 한다는 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른 사람끼리 호기심을 갖고 그러다보니 점차 그렇게 범죄로 발전한 것이죠. 전 성범죄를 많이 저질렀지만 부유한 가정 형편이 다 절 구해줬죠. 성범죄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합의만 되면 죄 자체가 없어집니다. 전 제 삶을 비난하며 점점 성범죄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번사건도 누나에게 당했지만 과거 전과가 있기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 때문에 지금 죄값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 중요한 증거를 찾았으니 재심의 증거로 재판을 기대해봐야겠죠.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 삶에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늦은 감이 있겠지만 한 번 해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제 사건은 성범죄의 약한 경우인데도 성범죄로 보니 억울한 면도 있죠.
지금 제 마음 속엔 저조차도 어떤 마음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 마음 한 구석엔 내 인생을 망친 피해자를 찾아 복수를 하고 나서 나 또한 죽어버릴까?
‧ 사회에서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그녀도 나의 아이를 갖고 하늘나라로 갔는데 더 늦지 않게 내가 따라갈까? 통영 사건 때 우연히 신문기사에서 그 피해 어린이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서 처음으로 성범죄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사회적으로 그 이후 성범죄의 인권은 무시하고 무엇이든 성범죄자는 안된다고 하니 내가 과연 이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 예전엔 성범죄자만 전자 발찌를 착용했는데 지금은 강력범죄자들도 확대가 되었는데 제겐 전자발찌 10년이 있습니다.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에 저 역시 죄값이나 전자 발찌를 찰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힘든 수용 생활을 견디며 살아왔는데 가석방의 꿈은 사라지니 다들 제가 여기서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죠?
그리고 왜 제가 제 소개를 할 때 인간쓰레기라 했는지
저 때론 이모뻘 되는 중년의 여성과 성관계도 가져봤고
인간으로써 이러면 안되는 것인데도 전 제 쾌락만을 위해서 저질렀으니…
이젠 점점 나이가 먹고 지치는 것 같아요.
제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자식 놓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싶어요. 저와 같은 성범죄자에게 이런 꿈이 허락될지 모르겠지만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 짝사랑만 많이 했을 뿐, 진정한 사랑은 딱 1번뿐이었어요. 어쩌면 저 역시 이 모임에서 저의 짝을 긴 시간을 두고서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언젠가 신문과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성범죄이던 강력범죄이건 재범을 막으려면 그들에게도 일자리를 주어서 힘들게 번 돈의 값어치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고… 저도 남자이기에 가끔 여자와 관련된 꿈을 꾸면 취침시간에 화장실에서 자위행위를 합니다.

이제 2013년 새해도 밝았습니다.
저 2013년엔 다른 사람들처럼 자위행위를 하지 않고 이겨나가 보겠습니다. 1990년대엔 이 인간 쓰레기도 프로축구 선수였답니다. 또 다시 제 뼈를 깎는 마음으로 성중독을 이겨나갈 것입니다. 저 혼자선 지금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자세히 알지를 못합니다.

저와 함께 갖가지 치료법이나 여러 활동에 대해서 궁금증을 풀어주실 분은 편지를 주세요. 남녀노소 따지지 않겠습니다.
편지를 통해서 많은 분들과 교류 하고 싶습니다.
날씨가 추우니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2013.01.08
대구에서 이00 올림

p.s.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시는 집사님, 전도사님 또한 제가 도움을 주셨으면… 혼자서 성경공부하기 너무 힘들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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