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온 세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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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RI (112.♡.201.67) 작성일13-02-25 18:10 조회1,2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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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제가 1월 27일부터 이곳에서 좀 사정이 있어서 징벌을 받고 2월 12일에 방으로 다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징벌을 바치고 바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가정 예배에서의 날짜별로 된 책 좀 본다고 이렇게 늦었습니다.
지체님들의 좋은 말씀 덕분에 다시 한 번 제 마음을 잡아보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잘 모르시겠죠?
이곳 교도소란 교정시설에선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지만 허용되고 있는 최소한이 있습니다. 창살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TV 시청, 운동, 면회, 신문, 독서 등이 가능합니다. TV시청 이래봐야 1가지 채널에 법무부 교정 시스템에 의해서 녹화되어 보여주는 겁니다. 운동은 하루 1번 30분, 면회 1일 1회 10분가량, 독서 및 신문은 다른 방에선 볼 수 있죠. 하지만 교도소 내에서 수용 법률을 어기게 되면 그나마 이 혜택마저 사라집니다. 수용 법률이 여러 가지 큰 게 있는 게 아니에요. 방에서 싸운다거나, 교도관의 지시를 지키지 않는 것, 다른 거실 수용자들의 수용생활을 방해하는 것 등 여러 가지 많습니다만 제가 생각해도 너무 우습습니다.
전 사회에 있을 때 사업도 제 욕심 때문에 부도가 났고, 그 이후 부모님께서 이혼 하시고 저의 생사를 다툰 교통사고...
2000년부터 10년의 세월이 저에겐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2010년 3월 사회에 계신 어머니와 동생만을 남겨두고 전 여기에 와 있습니다. 어머니께선 한 쪽 폐가 없으시고, 심폐증이란 질환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이 되어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계십니다.
교도소에 들어오면 의식주는 해결이 되니 좋겠다고 생각들 하시겠지만 여기에서도 돈의 가치는 적용됩니다. 라면, 빵, 간식거리와 기초생필품은 자기가 돈을 주고 구매를 해야 합니다. 전 어머니께서 힘들게 아끼신 돈의 일부를 저에게 보내주시면 전 그 돈으로 신문을 구매해 봅니다. 대신 먹을 것을 사 먹기는 힘듭니다. 다른 방에서 저를 보고 딱해서 빵과 과자 등의 간식의 일부분을 주려고 하는데 그 마저도 안된다며 봉사원가 간식 받는 문제 때문에 제가 분을 못참아서 교도소 철문을 발로 차서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혼자서 징벌 방에서 추위에 떨며 생활하였습니다. 첫날 또다시 수갑을 채우고 쇠사슬로 제 팔과 다리와 몸을 묶더라구요. 정말 전 그것까지는 차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다시 고통 당할 생각을 하니 죽는게 나을 것 같아서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앞 전 편지에 제가 말씀들을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로 많이 사랑했던 그녀는 제 아이를 데리고 임신한 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 이후 제 주위에 친했던 친구들, 외삼촌까지도 뭐가 그리 급한지 다들 먼저 떠났습니다. 전 지금도 제가 진정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출소 후 작고 소박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밖에... 미래에 계획이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죠. 제 머릿속과 마음은 아직 1990년대 - 2000년대를 그리워하며 과거에 빠져있죠. 다 지나간 과거니까 빨리 생애를 마감하고 새로 태어나 새롭게 시작할 준비만 할 뿐 남은 생애에 대해선 미련은 없었던 거죠.
교도소에선 수갑과 쇠사슬이 자살방지에 대한 보호장비라는데 전 그것이 고문장비 같아요. 이번엔 제가 장비들을 보고 거부반응을 일으키니 틈도 없이 꽉 조여서 꽁공 묶어 징벌실에서 CCTV로 구경하는 겁니다. 지금은 마음이 가라앉아서 그전에 있던 방으로 다시 왔습니다. 제 자신에게 물어봐도 전 자살은 정말 무섭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얼굴은 어떻게 볼지... 예전에 제가 꿈을 꿨는데 너무나 생생해서 꿈을 꾼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부모님을 뵙고 제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려 하니 부모님께서 제게 ‘누구세요?’이러시면서 몰라보시는 겁니다. 옛 말에 부모보다 먼저 떠난 자식은 불효자라잖아요. 이 꿈 때문에 제가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인데 제게 억환님이라고 하니 느낌이 좀...
운동을 하며 어른들과 많이 생활하다 보니 전 형님, 형님들은 제게 그냥 자식뻘이 되니 억환이라고 부르고 그게 더 가족같네요.
하루에도 몇 번씩 슬픈 노래나 여자친구와의 추억이 있는 노래가 나오면 밥 먹고 웃다가도 바로 눈물 바다가 되고... 조울증, 우울증, 성 중독... 제가 어떻게 해아 할지
아직 사회로 나가려면 5년이란 세월이 있지만 전 그 5년이란 세월동안 많은 회원분들과 친해지고 싶어요. 그러면서 친하게 지내며 정도 쌓고... 제겐 정말 많은 지체님들 덕분에 힘이 납니다.
올 겨울도 이제 다 지나간 것 같아요. 올해 겨울도 내복 한 벌 없이 우여곡절 끝에 넘어갔네요. 내복이 2만원이 넘으니 수건이나 옷들까지도 시장에서 사서 넣어주는게 안되고 무조건 구매를 해서 입어야 하니 정말 돈 없는 사람은 고생하며 수용생활을 해야 하니 ...
...
다음 편지도 기다리면서 이렇게 복귀 편지를 드렸습니다.
몸 건강히 하시는 일에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2013.02.14
제가 1월 27일부터 이곳에서 좀 사정이 있어서 징벌을 받고 2월 12일에 방으로 다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징벌을 바치고 바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가정 예배에서의 날짜별로 된 책 좀 본다고 이렇게 늦었습니다.
지체님들의 좋은 말씀 덕분에 다시 한 번 제 마음을 잡아보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잘 모르시겠죠?
이곳 교도소란 교정시설에선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지만 허용되고 있는 최소한이 있습니다. 창살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TV 시청, 운동, 면회, 신문, 독서 등이 가능합니다. TV시청 이래봐야 1가지 채널에 법무부 교정 시스템에 의해서 녹화되어 보여주는 겁니다. 운동은 하루 1번 30분, 면회 1일 1회 10분가량, 독서 및 신문은 다른 방에선 볼 수 있죠. 하지만 교도소 내에서 수용 법률을 어기게 되면 그나마 이 혜택마저 사라집니다. 수용 법률이 여러 가지 큰 게 있는 게 아니에요. 방에서 싸운다거나, 교도관의 지시를 지키지 않는 것, 다른 거실 수용자들의 수용생활을 방해하는 것 등 여러 가지 많습니다만 제가 생각해도 너무 우습습니다.
전 사회에 있을 때 사업도 제 욕심 때문에 부도가 났고, 그 이후 부모님께서 이혼 하시고 저의 생사를 다툰 교통사고...
2000년부터 10년의 세월이 저에겐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2010년 3월 사회에 계신 어머니와 동생만을 남겨두고 전 여기에 와 있습니다. 어머니께선 한 쪽 폐가 없으시고, 심폐증이란 질환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이 되어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계십니다.
교도소에 들어오면 의식주는 해결이 되니 좋겠다고 생각들 하시겠지만 여기에서도 돈의 가치는 적용됩니다. 라면, 빵, 간식거리와 기초생필품은 자기가 돈을 주고 구매를 해야 합니다. 전 어머니께서 힘들게 아끼신 돈의 일부를 저에게 보내주시면 전 그 돈으로 신문을 구매해 봅니다. 대신 먹을 것을 사 먹기는 힘듭니다. 다른 방에서 저를 보고 딱해서 빵과 과자 등의 간식의 일부분을 주려고 하는데 그 마저도 안된다며 봉사원가 간식 받는 문제 때문에 제가 분을 못참아서 교도소 철문을 발로 차서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혼자서 징벌 방에서 추위에 떨며 생활하였습니다. 첫날 또다시 수갑을 채우고 쇠사슬로 제 팔과 다리와 몸을 묶더라구요. 정말 전 그것까지는 차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다시 고통 당할 생각을 하니 죽는게 나을 것 같아서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앞 전 편지에 제가 말씀들을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로 많이 사랑했던 그녀는 제 아이를 데리고 임신한 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 이후 제 주위에 친했던 친구들, 외삼촌까지도 뭐가 그리 급한지 다들 먼저 떠났습니다. 전 지금도 제가 진정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출소 후 작고 소박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밖에... 미래에 계획이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죠. 제 머릿속과 마음은 아직 1990년대 - 2000년대를 그리워하며 과거에 빠져있죠. 다 지나간 과거니까 빨리 생애를 마감하고 새로 태어나 새롭게 시작할 준비만 할 뿐 남은 생애에 대해선 미련은 없었던 거죠.
교도소에선 수갑과 쇠사슬이 자살방지에 대한 보호장비라는데 전 그것이 고문장비 같아요. 이번엔 제가 장비들을 보고 거부반응을 일으키니 틈도 없이 꽉 조여서 꽁공 묶어 징벌실에서 CCTV로 구경하는 겁니다. 지금은 마음이 가라앉아서 그전에 있던 방으로 다시 왔습니다. 제 자신에게 물어봐도 전 자살은 정말 무섭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얼굴은 어떻게 볼지... 예전에 제가 꿈을 꿨는데 너무나 생생해서 꿈을 꾼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부모님을 뵙고 제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려 하니 부모님께서 제게 ‘누구세요?’이러시면서 몰라보시는 겁니다. 옛 말에 부모보다 먼저 떠난 자식은 불효자라잖아요. 이 꿈 때문에 제가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인데 제게 억환님이라고 하니 느낌이 좀...
운동을 하며 어른들과 많이 생활하다 보니 전 형님, 형님들은 제게 그냥 자식뻘이 되니 억환이라고 부르고 그게 더 가족같네요.
하루에도 몇 번씩 슬픈 노래나 여자친구와의 추억이 있는 노래가 나오면 밥 먹고 웃다가도 바로 눈물 바다가 되고... 조울증, 우울증, 성 중독... 제가 어떻게 해아 할지
아직 사회로 나가려면 5년이란 세월이 있지만 전 그 5년이란 세월동안 많은 회원분들과 친해지고 싶어요. 그러면서 친하게 지내며 정도 쌓고... 제겐 정말 많은 지체님들 덕분에 힘이 납니다.
올 겨울도 이제 다 지나간 것 같아요. 올해 겨울도 내복 한 벌 없이 우여곡절 끝에 넘어갔네요. 내복이 2만원이 넘으니 수건이나 옷들까지도 시장에서 사서 넣어주는게 안되고 무조건 구매를 해서 입어야 하니 정말 돈 없는 사람은 고생하며 수용생활을 해야 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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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지도 기다리면서 이렇게 복귀 편지를 드렸습니다.
몸 건강히 하시는 일에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201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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