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를 만났다. 나는 부자가 부자가 된 비결이 궁금했다. -비결이 뭡니까? 나는 물었다. 부자는 싱긋 웃더니 호주머니에서 작은 알약 하나를 꺼냈다. -이 약을 팔았다네. 그가 말했다. -무슨 약이길래? -그건…. 지그시 나를 응시하며 잠시 뜸을 들인다. -절망에 이르는 약. 나는 부자가 뱉은 단어를 되뇌었다. 절망? 절망이라고? -정확히 말하면 30%의 기쁨과 70%의 절망을 주는 약이지. 부자는 덧붙인다. 나는 물었다. -그런 약을 누가 사겠습니까? 40%나 손해일 텐데…. -그렇지 않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약에 중독되었어. 피식 나는 웃어버렸다. -기쁨보다 훨씬 많은 절망을 주는데 왜 중독이 됩니까? 사람들이 미쳤답니까? -사람들은… 미치지 않았지. 미쳐서 그런 게 아니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런 거라네. 세상에 기쁨을 줄 수 있는 것들은 아주 많아. 이를테면 따스한 햇살, 시원한 바람 맛있는 식사와 달콤한 잠 친구들과 나누는 정겨운 대화, 그들과 마주보며 짓는 미소 아름다운 시, 풀밭을 뛰어다니는 강아지 눈이 부시게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 이 작은 알약에 100%의 기쁨을 담는다 한들 그 모든 것들에 비하면 초라할 뿐이지.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부자는 우울한 잿빛의 눈동자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말했다. -행복을, 사람들은 선택할 수 있지. 그러나 불행은, 대개의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애써 고개를 돌리지. 그래서 언제나 불행의 어둔 그림자는 우리들 등 뒤에 남겨져. 우리들은 등 뒤에 닿으려는 손아귀에 붙잡히지 않으려 허겁지겁 도망을 치고… 결국 우리는 불행을 선택할 수 없고, 의지할 수 없고, 마주볼 수도 없기에 그것에 언제까지나 쫓겨 다닐 뿐이야. -그래서 무슨 상관입니까? -행복은 우리의 권리이지만 불행은 우리에게 권력을 행사한다는 거야. 그러므로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고 노예처럼 부리기 위해선 이 작은 알약에 꼭 기쁨보다 많은 절망을 담아야 하는 것이지. 이 약을 먹고 나면 30분의 기쁨 후에 70분의 절망을 맛볼 것이네. 70분의 절망에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위해 사람들은 다시 30분의 기쁨을 찾아 헤매겠지. 그들은 이 작은 알약을 원하고 원망하며 증오하며 두려워하며 충성하게 될 것이야. 천천히 스스로의 삶에 대한 통제를 잃어갈 것이고, 행복을 선택하려는 목적이 아닌, 오직 불행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목적으로만 살아갈 것이네. 부자는 분홍 혀끝으로 두터운 입술을 핥아 침을 바른다. 나는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궤변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장난삼아 이렇게 물어보았다. -당신도 이 약에 중독되었습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다른 것에 중독되었어. -그게 뭡니까? -돈. 한음절의 단어, 그보다 긴 침묵. 나는 머리를 굴려보고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의 이론에 따른다면, 돈은 당신에게 절망을 줄 수 있어야 하겠군요.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오래 전 나에게 돈은 가장 큰 절망이었고 공포였지. -왜? _가난했거든. -그렇군요. -그래. -그럼 지금은 아닙니까? -지금 나는 부자라네. 더 이상 가난하지 않아. -아니, 내 말은 지금 당신에게 있어 돈이란 더 이상 절망과 공포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냐는 겁니다. -글쎄. -…. -좀 더 생각해봐야겠군. 부자와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호주머니에 작은 알약이 들어있는 걸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챙겨왔을 수도, 어쩌면 그가 슬쩍 집어넣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 작은 알약을 쳐다보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절망이라니,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마도 이런 약 때문이 아니라 그 매끈한 혓바닥 덕분에 돈을 번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한참을 쳐다보면 볼수록 그 작은 알약은 기분 나빴다. 무언가 가슴 깊은 밑에서 스멀스멀 두려움이 기어오르는 듯 했다. 겨우 이까짓 게 나에게 절망을 줄 수 있다고? 나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고? 그럼에도 실제로는 엄밀히 두려워하고 있는 나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알약을 삼켰다. 부자의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